최근 신문을 보노라면 불안감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제목부터가 눈을 확 끌어당긴다.
“무너지는 중산층, 중산층 진입 유지 왜 어렵나? 청년실업에 명문대 나와도 워킹푸어,” 대충 이런 식이다.
기사를 조금 읽어보니 ‘60대 부모가 중산층 이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자녀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비율은 12.67%에 불과’하다고 되어 있다. 아버지와 자녀 모두 그런대로 중산층이다 싶은 경우는 전체의 1/8 정도라는 것이다.
중산층 비율은 당연히 40-50대가 가장 높다.
우리사회의 경우 1979년 (현재 36세)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지극히 줄어들었고, 1984년(31세) 이후는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보면 된다. (88만원이던 것이 최근엔 110만원으로 인상된 것 같기는 하다.)
따라서 현재 우리 경제구조는 1959년생부터 196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 즉 56세에서 46세에 이르는 중년 중산층이 밑의 세대를 마르크스식 표현을 빌리자면 ‘착취하는 구조’로 되어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2006년부터 우리 대기업들이 인력채용을 사실상 줄여왔기 때문인데, 이는 그 배경에 무역경쟁력의 저하와 거액의 부동산담보대출로 인한 소비여력의 저하와 그로 인한 내수부진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40-50대는 마냥 좋기만 할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12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전체의 35%를 50대가, 32%를 40대 가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쳐서 67%, 즉 부채의 2/3는 40-50대가 안고 있어서 전전긍긍인 것이다.
소득은 다른 세대나 연령보다 높지만 자녀 교육비와 대출이자 내느라 현실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라 본다. 게다가 언제 직장을 잃게 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도 대단히 클 것이다.
이점과 관련해서 이번에 정부가 ‘안심전환대출’이란 것을 내놓았다. 이 대출로 갈아탈 경우 원금의 대략 1.3% 정도 되는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된다는 점과 금리 자체가 0.4% 정도 저렴하다는 점이 메리트라 하겠다.
그렇다면 기존 대출이 연간 금리 3%에 3억원이라면 이자납입에 월 75만원이 필요한데, 이를 20년 만기에 금리 2.55% 짜리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조건의 안심대출로 갈아탔다면 월 납입액은 대략 159만원이 된다.
당장 매달 납입해야 하는 부담이 2배 이상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소 의문이다, 이거 연체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겠는가, 내 말은 그다지 安心(안심)이 될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분명 이자부담이 주는 것은 사실이고 비싼 중도상환수수료를 물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하다만은 기존에 내던 부담보다 2배 이상의 부담을 과연 꾸준하게 그것도 무려 20년씩이나 성실하게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국가경제 전체적인 견지에서도 그렇다. 단기적으로 보면 안 그래도 부진한 내수경기에 더더욱 소비력을 위축시키는 악재가 되었으면 되었지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내 보기에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은 그 목적이 지금부터라도 과다한 가계부채를 원금상환 방식으로 일부 유도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대출로 갈아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심 많은 정부가 근심을 좀 줄여보자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우리 경제가 그간의 부동산 담보대출로 인해 생겨난 과다한 부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향후 2년 이내로 부동산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기득권 세대이자 디펜딩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40-50대야말로 가장 어려운 처지를 당하게 될 것이라 본다. 순식간에 역전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쩌다보니 모두가 루저(loser)가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2년의 어느 날 서울 강남 한 모퉁이에 타워팰리스, 즉 ‘탑 궁전’이란 이름의 거대한 은백색의 탑이 들어서더니 전 국민의 넋을 쏙 빼먹고 말았다.
우리 민족 특유의 평등주의적 심성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그 이후 너도 나도 탑을 지었고 탑에 들어가 살고자 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졸지에 좀 모자란 아버지이자 가장이 되었다.
그랬더니 몇 년도 안 되어 전국 방방곡곡, 시골의 논두렁 옆에도 거대한 탑들이 사정없이 들어섰다.
탑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밑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장려했다. 그 탑의 높은 층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은 밑을 내려다보면서 ‘오랜 고생 끝에 나도 드디어 무언가 커다란 성취를 했다’는 느낌으로 感慨無量(감개무량)해했다.
돈이 없어 그런 탑에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주어졌다. 어느날 갑자기 모르던 은행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니, 귀하신 몸께서 직접 전화를 주시다니 하며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에게 뭐 하십니까? 즉각 탑으로 올라가셔야지요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요? 전 돈이 없는데요, 이렇게 말하자 은행원은 시간 나실 때 나오셔서 서류에 간단히 사인만 하시면 바로 탑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집값은 오를 것이란 생각에 당분간 이자를 내면서 버티다 보면 나중에 대출금 자체는 얼마 부담이 되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바로 문제의 발단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효과적인 광고 카피는 ‘우리는 특별한 고객 몇 분만 한정해서 모십니다’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중반 무렵 그 ‘특별한 소수의 한정된 고객’이란 결국 우리 국민 대다수였던 것이다.
그 바람에 주택업자들은 그 비싼 고가의 내구재인 아파트를 양떼기로 팔아먹는 데 성공했다.
아니, 1억짜리 벤츠를 몰고 다니면 와! 돈 많네 하고 경탄하면서 수억에 달하는 아파트는 너도 나도 사들였으니 당시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시대의 공기가 그랬다는 식으로 이해할 밖에.
너도 나도 부가 세습될 것 같아서 불안해한다. 가진 놈만 잘 살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알고 보면 우리나라야말로 신분상승이 대단히 활발한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아무 것도 없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오늘날 타워형 아파트에 살고 그런대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누구는 저 먼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다녀왔다고 페이스북에 자랑질을 해대는 세상 아닌가 말이다.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는 과거 우리가 급격히 발전해올 수 있었던 엄청난 힘으로 작용했다. 네가 했다고? 그럼 내가 못 할 거 없지 하는 패기와 도전의 정신 말이다. 너하고 나하고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하면서 거세게 도전해갔던 우리가 아닌가.
그 바람에 우리 사회는 속으론 딴 생각을 해도 겉으론 신분차별이나 능력에 따른 차등을 인정한다는 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내는 지도층 인사는 한 명도 없다. 모두들 庶民(서민)만을 위한다는 식이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말은 ‘평등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는 실로 엄청나다.
한동안 평등주의는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문제점도 있는 법이니, 바로 타워형 아파트가 등장하자 앞뒤를 따지지 않는 전 국민적 레이스로 이어졌다.
교육경쟁도 본질은 마찬가지였다.
네가 100 만원 짜리 과외를 시킨다면 나는 200만원 짜리 시키겠다는 정신 역시 평등주의의 소산이었다. 그 경쟁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아버지는 자녀에게 너무나도 죄송해하고 미안해했다.
그 결과 아파트 업자만 배를 불렸고 대학재단들만 호시절을 누렸다.
2002년의 타워팰리스 출현,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2014년이 되자 전 국민이 가계부채의 덧에 빠져 신음하고 있으니 이거야 원. (12년은 운세의 작은 순환마디이다.)
말 머리를 좀 돌려보자. 웃기는 얘기 한 토막이다.
최근 ‘혁신 기러기’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기러기도 경제가 어려워서 혁신을 한다는 말인가 싶지만, 그런 내용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이란 명분하에 추진된 전국의 여러 혁신도시 때문에 생겨나는 기러기 아빠들을 지칭한다.
본부 이전기관 종사자 중 70% 이상이 홀로 이주해 오는 ‘혁신기러기’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 그들을 수요층으로 하는 소형 오피스텔에 대한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이에 더하여 주말 부부의 빈틈을 타고 매춘을 통해 수입을 올리려는 젊은 아가씨들도 대거 혁신 도시로 몰려 들어가고 있다는 동향 정보도 귓전에 들려온다. 오피스텔 인기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정말이지 살다 살다 별 말을 다 듣는다. 옛날 中東(중동) 기러기에서 시작된 기러기가 2000년대의 유학 기러기를 거쳐 드디어 혁신 기러기로까지 진화발전하고 있으니 세상 참 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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