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법 [가끔은 제정신]펌
몇 년 전 연구년을 맞아 우리 가족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한동안 지냈다 태평양과 아름다운 해변,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 풍부한 과일들 수 많은 캘리포니아의 매력들이 아직도 나와 우리가족의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중 최고는 역시 캘리포니아의 쾌적한 날씨다. 여름 한낮에는 덥지만, 거의 일 년 내내 맑고 건조하고 시원한 날씨는 야외에서 운동이나 산책, 소풍 등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날씨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라도 현겨울의 아침과 저녁은 매우 쌀쌀하다. 특히 밤에 비라도 오면 아침에는 겨울외투를 꺼내 입는 사람이 있을 만큼 춥다. 그런 날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러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면, 일부 어린 학생들이 얇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만 입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나와 내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들 부모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추운 아침에 아이들을 저렇게 내보내다니, 감기걸리게."
우리 아이들은 그런 적이 없음을 서로 확인하며 나와 아내는 자식을 잘 돌본다는 자부심에 서로를 기특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몸이 아파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준비한 간단한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프니 찾지말라고 얘기하는 나게 아이들은 뭘 입고 가야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나 뭐 입고 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애들이 자기가 입을 옷을 스스로 못 골라 입지?'
이유는 내 아내가 너무 좋은 한국 엄마였기 대문이다. 나의 착한 아내는 아침이면 항상 먼저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나와 아이들을 깨웠다. 그러고는 아침을 먹는 동안 아이들 방으로 달려가 그날 입고 갈 옷을 꺼내서 딱 펼쳐놓았다. 날씨와 시간표, 심지어 색깔까지 고려해 완벽한 코디를 해주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아침에 날씨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을 입고 갈지 고민하고 선택한 적도 없다. 나와 내 아내는 그것이 좋은 부모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 아이들은 그 때까지 자기 옷을 스스로 골라서 입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반면 추운 날 아침에 옷을 잘못입고 와서 덜덜 떨었던 미국 아이는 아마 몇 번의 그런 실수를 통해 배웠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깥 온도와 비가 올 확률을 확인하고, 시간표에 따라 입고 갈 옷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그 미국 아이들보다는 감기에 덜 걸리겠지만, 결국 옷 입는 법은 늦게 배우고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늦게, 그리고 덜 배우게 될 것이다. 요즘 감기로 죽는 아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나중에 진짜 중요한 선택에서 실패한다면 그때는 죽을 수도 있다. 실패해도 될 때 그냥 실패하면서 선택하는 법을 배우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