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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광고, 들이대지 않으니 맘속에 들어오네

w우주z 2013. 3.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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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PPL(Product Placement)은 논란의 중심에 선다. 제작비를 확보하기 위한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국, 그리고 제품을 홍보해야 하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등장한 것이 PPL이지만 제품 노출 수위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실컷 제품을 들이밀고도 '과도한 PPL'이라는 비난만 받고 효과는 못 보는 사례도 허다했다.

하지만 똑같이 영화나 드라마를 활용해도 PPL과 달리 제품 또는 브랜드를 감추는 고차원적인 마케팅 방식도 있다. 영화나 방송국과 협업(컬래버레이션ㆍcollaboration)을 통해 영화ㆍ드라마 제작에 직접 뛰어드는 '컬래버레이션 필름' 마케팅이다. 물론 초기에는 제품을 강조한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러나 최근 컬래버레이션 필름에는 제품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브랜드를 맨 뒤에 놓는 현대카드의 '브랜디드 필름' 이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는 브랜드까지 숨긴 컬래버레이션 필름도 등장했다. 코오롱스포츠 제작, 박찬욱ㆍ박찬경 감독, 송강호 주연의 '청출어람'이라는 단편 영화가 그랬다. 컬래버레이션 필름 마케팅은 비용이 더 많이 들고 고객의 반응 속도가 느리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좋았다. 대박을 친 경우도 꽤 있고, 못해도 중박인 경우가 많다.

광고 영화의 시초가 된 2001년 BMW의 '더 하이어(The Hire)'만 하더라도 영화의 목적은 '제품' 광고였다. 2006년 이 방식을 모방한 기아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차 로체를 홍보하기 위해 10분짜리 단편 드라마 '아이덴티티'를 선보였고, 2009년에도 한효주ㆍ김동욱 주연의 멜로 드라마 '쏘울 스페셜'을 통해 자사의 쏘울 자동차를 적극 내세웠다.

모토롤라도 2009년 신제품 '모토클래식'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류승완 감독이 연출하고 정두홍과 케인 코스기가 주연으로 활약한 단편 영화 '타임리스'를 선보였고, 이를 TV 광고에도 적극 활용했다. 결국 목적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좀 더 고차원적인 방식에서는 제품은 빠지고 '브랜드'만이 등장했다. 현대카드가 만든 'Make your Rule' 광고에서는 현대카드의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면서도 기존 광고보다 큰 '설득'과 '이해'의 메시지를 담아야 했기에 15초가 아닌 60초와 180초 분량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멘토' 편과 '복싱' 편, 두 가지로 출시됐으며 멘토편은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만화 '아톰'의 원작자 데즈카 오사무, 건축가 가우디, 여류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 등이 등장해 막연히 멘토를 찾고 그것을 좇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멘토가 되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너만의 주먹을 뻗어라'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복싱 편은 자신만의 룰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 인생이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 광고만 봐서는 대체 누가, 왜 만들었는지, 광고인지 캠페인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결국 호기심을 갖던 사람들은 맨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현대카드' 로고를 보고 브랜드를 인식하게 된다.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를 증가시키는 '브랜디드 필름'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고차원적인 광고다. 브랜드는 최대한 숨기고 전체 60초 혹은 180초 중 1초만 노출했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컬래버레이션 필름은 더하다. 브랜드는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한동안 TV 광고계를 달궜던 박찬욱ㆍ박찬경 감독, 송강호 주연의 '청출어람'은 '도대체 저게 뭘까'라는 의문을 낳으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됐다.

일반 영화의 개봉 전 예고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는 스토리와 주연, 감독만이 부각된다. 노인이 된 송강호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소녀 배우 전효정의 조합에 세계적 거물이 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인터넷에 들어가 한번 더 이 영화를 검색하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도 역시 다른 영화들과 다를 바 없는 영화에 대한 얘기만 무성하다. 아이러니지만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모두 이 영화를 배급한 코오롱스포츠가 노린 효과였다.

코오롱스포츠는 브랜드 탄생 40주년을 맞아 다소 노후한 브랜드 이미지를 신선하게 바꾸기 위해 이 같은 컬래버레이션 필름 방식을 택했다.

제품 홍보를 위한 상업적 제작물 차원에 머물렀던 광고 영화나 여전히 브랜드가 주였던 '브랜디드 필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감독의 영감과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담는 방식이다. 다만 일관된 메시지는 있다. '자연'이다. 코오롱스포츠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이다 보니 담아야 할 핵심 가치는 이와 같이 정했던 것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청출어람' 제작을 위해 코오롱스포츠는 감독에게 시나리오와 캐스팅 등 전권을 위임했다. 요구 사항은 브랜드 철학인 'Way to Nature(자연으로 가는 길)'를 담아 달라는 것뿐이었다.

판소리를 모티브로, 득음을 하기 위해 산행을 나선 고집불통 스승과 철부지 소녀 제자가 보내는 특별한 하루를 그려낸 단편 영화 '청출어람'은 인터넷에서 개봉됐으며,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간 코오롱스포츠 웹사이트를 보고서야 여기에 코오롱스포츠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막대한 투자비를 들였는데 브랜드 노출이 적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코오롱스포츠는 '은둔주의 전략'으로 엄청난 효과를 누렸다.

관객들은 이미 '다소 나이들어 보이고 고루해 보이는 코오롱스포츠의 도전이 신선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신인 배우 전효정에 대한 궁금증은 언론 인터뷰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코오롱스포츠라는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자신을 숨기고도 오히려 자신을 효율적으로 광고하고 홍보한 셈이다.

코오롱스포츠는 4월 말 이 프로젝트의 2탄 격인 '사랑의 가위바위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조용한 가족'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영화로 독특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각광받고 있는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청출어람'과는 전혀 다른 로맨틱 코미디가 될 전망이다. 주연배우로는 박신혜와 윤계상이 발탁됐다.

앞서 '판소리'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다루며 '자연'이라는 테마를 자연스럽게 살린 박찬욱ㆍ박찬경 감독에 이어 김지운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어떻게 'Way to Nature'라는 주제를 살릴 수 있을지도 흥미를 자아낸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무성한 기대감과 흥미가 모두 코오롱스포츠의 '노림수'라는 점이다.

[박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