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가토 다이조
눈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한 사람, 제멋대로 굴어서 남들에게 상처주는 사람, 지나치게 헌신적이어서 상대방이 질리거나 먼저 스스로 지쳐버리는 사람
사람관계가 가장 어려운 이유를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문제는 어렸을 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1.
문을 열고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문에 다가가자 어른이 먼저 그 문을 대신 열어준다. 스스로 문을 열어보고 싶어 했던 아이는 투정을 부린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줄 아는 부모라면 아이게 “미안 하구나 정말 몰랐어, 다음번에는 꼭 네가 열게 해줄게.” 하고 달래줄 것이다. 하지만 성숙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가 짜증냈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낸다. 그 아이에게는 누가 열든 상관없다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른은 그 정도 일로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창피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기보다 자신이 그까짓 일로 화를 낼리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는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까닭 없이 불쾌해지거나 자신이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날 때는 이 “있을 수 없는 일” 이 일어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경우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다.
2. 분명 어른의 눈에는 이것보다 저것이 더 좋은 경우가 흔히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집 센 부모는 화를 낸다. 이때 아이는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을 멈춘다. 자연스런 감정을 억누르고 마음속에 ‘당연히 그래야할’ 감정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집이 센 부모는 내 아이는 이래야 한다는 자녀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그 틀에서 벗어나면 화를 참지 못한다. 부모의 보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아이는 부모가 바라는 자녀상에 자신을 맞춘다. 자연스런 자신을 일그러진 자녀상에 맞춰 다시 만들어낸다.
3. 아이는 마음속으로 그 일을 직접해보는데 의미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잉 적응한 착한아이는 해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그리고 하찮은 일로 느끼려 노력한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들인 힘은 대단하다. 소위 ‘착한 아이’가 쉽게 지치는 것도 모두 그 대문이다. 마찬가지로 착실한 어른이 쉬 피로를 느끼는 것도 자신의 참모습을 속이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이다.
4. 마음속에서 실제로 느끼는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 가장하는 ‘나’의 모습이 다르면 남과 친해지기 어렵다. 결국 자신을 희생하고 동신에 남도 희생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웃는 낯으로 얘기를 나누다가도 나중에는 서로 불쾌한 감정으로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 자리는 ‘가장한 나’와 ‘가장한 나’의 만남일 뿐, ‘실제로 느끼는 나’와 ‘실제로 느끼는 나’의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결국 상처만 남긴 채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용들로 ‘실제의 나’를 만나는 중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