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역사 속에서 이른바 '세기의 편지'는 무수하다. 편지라 하면 역시 연애편지다. 가장 슬픈 연애편지 중 하나는 시라노의 편지일 것이다. 에드몽 로스탕의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17세기에 실존했던 프랑스의 작가이자 검객인 시라노는 용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록산에게 자신의 마음조차 전하지 못한다. 대신 그에게 보내는 부하 크리스티앙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며 14년 동안이나 긴 짝사랑을 한다. 크리스티앙이 전사한 뒤에도 늘 오빠처럼 록산을 돌보던 시라노 드 베르제락은 반대파의 공격에 죽음을 맞이하면서, 크리스티앙이 죽기 전 전장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자신의 대필 편지를 읽어준다. 숨지기 직전 시라노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편지를 암송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모든 사실을 알게된 록산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용모 때문에 14년 동안 대필해준 연애편지로 사랑을 고백했던 시라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권총자살을 유행시킨 베르테르의 편지
시라노의 편지 이야기가 이슬비처럼 우리 가슴을 적셔준다.면 '베르테르'의 편지는 질풍노도와도 같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 끝머리에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당신을 처음 뵙게 되었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다가 내게 선물한 붉은 리본을 나와 함께 묻어 주시오. 리본은 내 호주머니 속에 있습니다. 총알이 재어졌습니다. 그러면 로테여.” 이 소설 때문에 18세기 말 전 유럽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들의 권총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기도 했다.
중세 프랑스 최고의 학자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과 편지는 살아있음 때문에 더욱 애절하다. 이들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리지만, 엘로이즈의 삼촌에 의해 아벨라르는 거세당한다. 이들은 각각 수도원과 수녀원으로 들어가지만 편지로 사랑을 이어간다. 수녀가 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보낸 편지 한 토막. “저는 로마의 황후가 되기보다도 당신의 아내되기를 열망하며, 심지어 당신의 창기가 되는 일이라 해도 그것은 황제의 황후되기보다 몇갑절 나를 기쁘게 했을 것입니다.” 아벨라르가 세상을 떠나자 엘로이즈는 그의 시신을 수녀원 뒷산에 고이 묻었고,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연인의 무덤을 지켰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들은 합장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닥터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그 아내 올가의 사랑은 소설 <닥터 지바고>의 원천. 56세 유부남과 34세 미망인은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 아래 올가는 스파이로 몰려 감옥에서 심문을 당했고, 파스테르나크까지 스파이로 만들려는 음모에 끝까지 버텼다. 임신 사실을 안 올가는 면회를 허락해 달라고 사정하지만, 그는 감방 안에서 유산한다. 그동안 파스테르나크는 올가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돌보며 줄곧 편지를 쓴다. “가만히 응시해도 눈 오는 밤 모든 것이 아물거려, 나는 경계를 그을 수 없네, 나 자신과 그대가 어디서 나뉘는지.” 4년만에 풀려난 올가는 파스테르나크와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냈지만 1960년 파스테르나크가 사망하자 당국은 다시 올가를 체포한다. 4년간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올가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파스테르나크의 무덤. 올가는 1995년 홀로 숨졌다.
아직 역사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청량리 부랑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해주는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가 부인 김연수씨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종교와 신분의 벽을 넘게 했다. 장로회 신학대학 1학년이던 최목사는 자기보다 4세 위인 수녀 김씨에게 빠져버린다. 이들의 사랑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대략 짐작이 간다. 김수녀는 최목사를 피해 전국의 수녀원으로 도망다녀야 했고, 결국 최목사는 마지막 편지를 김수녀가 있던 목포수녀원으로 부치고, 목포 앞바다에 빠져죽을 생각을 했다. 최목사가 유언처럼 보낸 그 편지. “내가 사랑한 여인,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주오. 사랑을 위해 하늘의 뜻에 반항했던 나와 사랑을 위해 하늘의 뜻에 순종한 게 다를 뿐 우리는 서로 사랑하였노라고.” 신학생은 얼마 뒤 세실 레스토랑에서 수녀복을 벗은 김수녀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연애편지가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안데르센은 가난하고 못생긴 데다 소심했다. 그는 짝사랑 여인 루이즈 콜린에게 수시로 시 한수가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안데르센이 받은 유일한 답장은 안데르센의 편지를 말리기 위해 “당신에게서 온 편지는 결혼한 언니가 모두 읽고 있으니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마십시오”라는 짧은 한마디. 루이스는 얼마 뒤 젊은 변호사와 결혼했다.
연애편지에 담은 지상 최고의 사랑이 결혼 뒤 무참히 구겨지는 일도 많다 . 헨리 8세는 앤 볼린과의 결혼을 위해 이혼도 불사하고, 법을 고쳐가며 교황청과 맞섰고, 이 때문에 영국성공회가 탄생했다. 1533년 헨리 8세는 캐서린 왕후와 이혼하고, 6년 동안 그를 피하던 앤 볼린을 새 왕후로 맞이한다. 헨리 8세가 결혼 전 앤에게 보낸 편지. “엄격한 당신이 몸과 마음을 허락한다면, 당신은 앞으로 나의 ‘유일한’ 연인이 될 것이오. 오로지 내 마음은 당신만을 위해서 봉사하게 될 것이오. 기꺼이 언제까지나 당신의 사람으로 남고 싶은 사람이.”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헨리 8세는 싫증이 났고 왕자를 낳지 못한 앤은 버림받는다. 앤이 왕후 자리에 있었던 기간은 꼭 1천일, 그래서 ‘천일의 앤’이다.
1885년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미국 정부의 압력에 밀려 땅을 내주며 보낸 마지막 편지 또한 유명하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팔려 합니까? 우리가 땅을 팔지 않겠다면 당신들은 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물은 기실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엄마 심장의 고동소리를 사랑하듯, 우리는 땅을 사랑합니다.(중략...)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정성을 기울여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땅을 보존하고 또 신이 우리를 사랑하듯 그 땅을 사랑해 주십시오.” 늙은 추장은 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땅을 내주고, 인디언의 영광을 접은 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전문: http://ayasofya.tistory.com/entry/우리에게는-낯선-생각이다)
세계사 교과서가 된 네루의 옥중서신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하를랄 네루가 여섯번째 옥중생활에서 홀로된 13세난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2년 반 동안 보낸 편지 속에는 위로나 탄식이 없다. 편지가 계속되는 동안 딸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세계사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딸은 부친의 옥중서신을 통해 세계사와 조국 인도에 눈을 뜨고, 인도 최초의 여수상이 된다. 이 1백96통의 옥중서신이 <세계사 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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