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라! 진정한 기업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외부상황이 변하면 또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라. 진정한 기업가는 시냇물과 같아 외부상황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움직인다.
– 빌 드레이튼Bill Drayton
수익모델조차 없는 회사
톨스토이는 말했다. 가난한 사람은 자존심을 갖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고. 공신은 시작한 후부터 ‘가난’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공신은 만성적자에 허덕였다. 2008년 말 동아리에서 기업화를 시작한 이후 2010년 말까지 공신은 사실상 수익모델이 없었다. 물론 나름대로 멘토링을 확대하고 체계를 만들어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봉사 단체 중 하나로 매년 청와대의 초대를 받았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이 교육장에 응원하러 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이런 침울한 상황은 어쩔 수 없이 회사 분위기로 이어졌고 밖에서 표현은 할 수 없었지만 한없이 의기소침해졌다. 사람은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지갑에 돈이 넉넉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공신은 이렇다 할 매출이 없어서 회사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나의 수입으로 해결해야 했다.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해봐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이트를 유료로 전환하는 거였다.
어찌 보면 정확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공신은 무료로 교육봉사를 하던 동아리였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창기 언론에 노출될 당시 무료 사이트라고 알려진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왠지 약속을 어기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공신닷컴의 회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이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고 챙겼다.
“공신 사이트가 최근 자주 다운되던데요. 들어올 때마다 솔직히 걱정됩니다. 이러다 사이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요.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됩니다.”
“공신닷컴에서 강의를 유료로 팔아도 뭐라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주입식 인터넷 강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으니까요. 더 나은 강의만 볼 수 있다면 기꺼이 돈 내고 듣겠습니다.”
하지만 공신은 일종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큰돈을 벌 수 있는 많은 제안들을 거절했던 터라 돈을 번다는 행위 자체에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상업적인 느낌이 드는 제안이면 무조건 거절을 했다.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신닷컴 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하겠다는 사교육 업체들이 꽤 많았는데, 그마저도 거절했다. 그것을 우리는 양심이라 착각했다. 기업임에도 돈을 버는 것을 죄악처럼 느꼈다. 정말 큰 착각이었다.
그렇다고 직원들 월급을 미룰 수는 없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대표 혼자 월급을 벌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을 대표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대표이사 앵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행히 당시 강성태 대표를 찾는 곳들은 많이 있었다. 당시엔 가리지 않고 다 가야 했다. 강연회를 다니며 어떻게든 돈을 벌어 그걸로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

수익에 쪼들리면 회사 분위기는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사무실에 항상 걸려 있는 태극기를 걸어둔다. 2년 사이 8번 옮겼다. 이사를 정말 자주했다.
(사진과 내용 무관함)
“아니, 사회적 기업도 돈을 받아요?”
물론 강연회도 녹록치는 않았다. 사회적 기업인데 왜 돈을 받느냐는 식이었다. 회사 챙기고 공부법 연구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 가도 막상 강연료는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회사에 다 쏟아붓고 나면 남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공부의신 책이 많이 팔려 인세가 꽤 됐는데 이 돈마저 공신 1기 멤버들에게 똑같이 나눠주었기에 강성태 대표가 받는 인세는 금새 바닥이 났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분명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생존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많은 분들이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를 혼돈했다. 간혹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사는데도, 왜 사회적 기업이 이익을 취하냐고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도 있다. 게다가 사회적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가 형편없을 거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 뿐 아니었다. 공신닷컴은 저소득층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이트니 가난한 애들이나 보는 컨텐츠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사실 공신은 ‘서울시 우수 사회적 기업’인데도 사회적 기업임을 밝히는 것이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아 사이트에서 내리게 됐다.
아라빈드 안과병원에서 얻게 된 가르침
그러던 중 공신은 우연히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인도의 맹인 인구가 1,200만 명이나 된대. 우리나라 전 국민의 1/4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야. 게다가 매년 2~300만 명씩 사람들이 추가로 시력을 잃는데, 그중 80%는 백내장으로 실명을 한다는 거야.”
듣고 보니 인도는 맹인의 숫자가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아라빈드 안과병원은 백내장 수술 전문병원이다. 연간 250만 건의 외래 진료와 30만 건의 수술이 이루어지는데, 전체의 2/3, 즉 60% 이상이 백내장 환자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가난한 환자에게는 무료로 수술을 해주는데 영업이익률이 44%를 넘는 다는 것이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무료수술을 한다면서 영업이익이 이렇게나 높다니! 사실 아라빈드 안과병원에 대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때부터 갑자기 엄청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공신을 몇 년째 끌어왔지만 돈을 벌면서 좋은 일을 하는 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아라빈드 병원은 안과의사인 벤카타스와미가 1976년, 58세에 은퇴해 세운 것이다. 안과의사였던 그는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돈이 없어 세상을 못 보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 아라빈드는 11개의 침상이 전부였다.
그 상황에서 그는 맥도날드 방식으로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맥도날드는 표준화, 대량생산, 원가절감 등으로 이익을 취하는 거대한 햄버거 체인아닌가? 병원에 햄버거 체인의 방식을 도입해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 당시엔 기존에 없던 획기적인 시도였다.
실제로 아라빈드 수술실 풍경이 좀 특별하다. 수술대가 두 개 있는데 의사가 한 명의 환자를 수술하는 사이에, 반대편 수술대에서 다음 환자를 위한 수술 준비를 한다. 의사가 수술을 끝내면 몸만 돌려 바로 다음 환자를 수술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의사가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데 드는 시간이 5분. 의사와 간호사들은 교대로 24시간 내내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햄버거 공장같다. 철저한 분업으로 일의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이 낮아진다.
당연히 비용이 내려간다. 특히 혈압검사, 시력검사, 간단한 상담 등 단순 작업에는, 고급 인력 대신 인건비 부담이 적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었다. 고졸 여성을 채용해 현장에 투입하는 한편, 맡은 업무에 관한 교육을 철저히 했다. 그리고 아라빈드는 수술재료까지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백내장 수술의 핵심재료인 인공 수정체의 수입비용이 비싸니까 자체생산으로 전환한 것으로 당연히 수술비 절감으로 이어졌고 이젠 그 재료를 수출해서 세계시장의 6%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주로 치료하는 아라빈드 병원이지만,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도 망설이지 않고 진료를 받으러 간다. 의사들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처럼 마술 같은 병원 시스템이 아니라 창업자인 벤카타스와미가 남긴 한마디였다. 그 말은 내 마음속에 깊이 와 닿았고, 그동안의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충분했다.
“이윤을 남기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가난을 도울 수 없다.”
아라빈드 병원 이야기는 한 권의 감동적인 소설같다. 아라빈드의 성공은 마법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한층 더 매력적이었다. 아라빈드 병원의 사례를 듣고 이 풍경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라빈드가 실명 위기에 처한 환자를 수술하는 모습은 공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멘토링하는 풍경과 많이 닮아 있었다. 아라빈드 병원이 이뤄낸 혁신을 공신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래와 같은 표를 적어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헬렌켈러
우리는 아이들에게 멘토를 만들어주고 그를 통해 꿈과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아라빈드가 사람들의 시력을 되찾아준다면 공신은 미래에 대한 시력을 되찾아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아라빈드가 수술에 필요한 재료를 팔아 해외에 수출하듯, 멘토링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을 별도로 판매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아라빈드도 일반 환자들에겐 돈을 받고 있다. 공신도 굳이 돈 많고 여유 있는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지 않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면 되지 않겠는가?
결국 공신은 내부의 치열한 회의를 거쳐 2010년 말부터 일부 콘텐츠의 유료화와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콘텐츠를 전면적으로 새로 제작해 정말 돈 내고 살 만큼 가치 있는 아이템으로 만들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유료화를 결심하자 사이트도 강의도 대충 만들 수가 없었다. 모든 강의를 새로 찍고 일정 수준을 높이려니 작업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0년 8월, 사이트를 개편하고 일부 콘텐츠의 유료화를 감행했다. 2006년 강성태 대표가 동생 강성영 공신과 기숙사 한켠에서 공신을 시작한 지 4년, 기업화한 지 3년 만에 마침내 수익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공신 학습전략 연구소(www.gongsin.org)
일종의 프리미엄 사이트로 첫 수익모델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빨랐다. 그런데 그 반응이 걱정했던 것과는 오히려 반대였다. 엄청난 반발을 예상했었는데 정말이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을 만큼, 오히려 콘텐츠 개편이 기대된다는 응원 글이 더 많았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강의에 가격이 매겨지자 학생들이 더 열심히 찾아왔다. 우선 완강 비율의 격차가 컸다.
‘아무 때나 볼 수 있으면 아무 때도 안 본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자 더 열심히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게시판에 올라오는 피드백만 살펴봐도 강의로 들은 공부법을 직접 실천하는 학생들이 훨씬 늘어났다. 생각해보면 자기 돈을 조금이라도 들이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대한민국 교육시장은 가격 자체가 곧 콘텐츠의 질이라 생각해 오히려 가격이 낮으면 판매가 덜 되는 경향이 있다.
강의를 무료로 듣는 저소득층 학생들의 태도 또한 달라졌다. 값이 매겨진 콘텐츠를 제공받으니 정말 가치 있는 콘텐츠를 누린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누군가 돈을 내고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시장을 통해 콘텐츠가 검증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강남 못지않은 교육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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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신을 이끌어오는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 사회적 기업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해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일반 벤처기업이 생존할 확률이 5%도 되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가치까지 고민하며 생존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역량이 엄청나게 분산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라빈드 병원과 같이 멘토링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들어내야 효율성과 전문성이 확보해 생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음을 크게 깨달았다.

유료화의 과정은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강대표가 가장 크게 반대했으나
결국 자발적 무료화 (형편이 어렵다고 따로 신청하는 경우 무료)로 결정되었다
돈을 버는 것이 죄는 아니다. 다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형편 어려운 아이들만 만나던 공신은 어떻게 돈을 받을지를 너무 오랜 시간 망설였고, 드디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게 되었다.
물론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실전이었다. 어마어마한 기존 사교육 업체들과 승부를 벌여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다행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열렬한 반응은 우리의 자신감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여전히 공신은 아이들의 응원에서 큰 힘을 얻는다. 아침마다 메일과 쪽지로 받아보는 학생들의 응원에서 충분한 희망을 발견한다. 이 따뜻하고 고운 기운이 공신의 앞날을 앞장서서 열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사람들이 있기에 공신은 이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나무들이 땅 속 수액을 부지런히 끌어 모으고 있다. 계절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꽃 소식은 언젠간 들려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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